조선료리의 우수성
- 맛과 냄새
맛과 냄새
조선민족료리는 음식맛이 각별히 좋고 향기로워 사람들의 입맛을 돋군다.
조선음식은 산뜻하고 생신하며 기름기가 적당하여 느끼한 감이 없으며 불쾌하거나 괴상한 냄새가 없고 구수하고 향기로우며 지나치게 담박하지도 않고 감칠맛이 있으므로 입맛을 돋군다.
조선음식이 사람들의 입맛을 돋구는것은 우선 제철에 나는 생신한 낟알, 고기, 남새, 산나물, 과일의 고유한 맛을 그대로 살릴수 있도록 음식을 만들었기때문이다.
음식감을 말리웠다가 재가공하는 경우도 많으나 조선음식에서 기본을 이루는것은 대부분이 제철에 나는 음식감을 직접 리용하여 만든것이다.
또한 간장, 된장, 고추장, 소금, 고추, 꿀, 후추, 겨자, 파, 마늘, 생강 등의 조미료와 향신료를 조선사람의 기호와 구미에 맞게 고르롭게 합리적으로 리용하였다.
그리고 여러가지 가공방법을 합리적으로 리용하여 음식을 만들었다.
특히 조선음식은 마늘, 고추, 참기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맛을 가진다.
고추를 여러가지 음식가공에 널리 리용함으로써 조선음식의 특성을 살렸다.
고추는 짠음식의 염기를 억제할뿐아니라 사람들의 생리에도 효과가 높다.
매운 맛의 성분인 카프사이신은 기름의 분해를 촉진시키고 피하지방의 축적도 방지하며 식욕도 돋구어준다.
고추의 활발한 리용, 고추, 마늘, 참기름의 적극적인 리용은 조선음식의 독특한 맛을 이루게 한 기본요인이였다.
그리고 조선음식은 자연적인 생신한 맛이 중시되여 산뜻하고 향기로운 맛, 생큼하고 달큰한 맛, 시원하고 상쾌한 맛, 고소하고 구수한 맛, 먹을수록 감칠맛이 나므로 어떤 음식이나 다 입맛을 돋구고 사람들의 영양섭취와 건강에 이바지하게 되였다. - 아름다운 색갈
아름다운 색갈
조선민족료리는 색갈이 아름답고 고운것이 특징이다.
사람들의 식욕을 돋구는데서 음식의 색과 모양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식욕이 입맛뿐아니라 눈맛과 코맛에도 관계되기때문이다.
조선음식은 음식감자체의 자연색을 뚜렷이 살려낸데 중요한 특성이 있다.
음식감의 고유한 자연적인 색을 살리기 위하여 음식감을 높은 열이나 많은 기름, 농마질의 혼합 등으로 가공처리하는것을 될수록 삼가하였으며 또한 색을 살려야 할 때는 오미자, 송기, 대추, 고추, 치자, 솔꽃가루, 쑥, 승검초잎, 청콩, 검은깨 등 식용식물의 색소물질들을 음식가공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그리고 은행, 잣, 호두, 대추, 밤과 실고추, 실파, 실닭알, 실버섯 등을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음식물의 예술적인 모양새, 볼품을 돋구었다. - 다양성
다양성
조선민족료리는 종류가 많고 다양하다.
우리 인민이 창조한 음식유산의 가지수는 무려 수천종에 달한다.
주식물에서 기본을 이루는 밥만 하여도 한가지 낟알로 지은 밥과 다른 재료를 섞어지은 밥 등 그 종류가 많으며 부식물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김치도 김장김치, 계절김치 등 수십종에 달한다.
또한 우리 인민은 주식물이나 부식물, 당과류나 음료를 막론하고 그것을 만드는데 재배작물은 물론 산나물과 산열매 등 갖가지 재료를 마련하여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었으며 한가지 재료를 가지고도 다양하게 료리하여 여러가지 맛나는 음식을 만들었다.
호박 하나를 가지고 호박밥, 호박잎쌈, 호박떡, 단호박설기떡, 호박절편, 호박전병, 호박지짐, 호박죽, 호박풀대죽, 호박잎죽, 호박범벅, 호박잎국, 호박김치, 호박찜, 호박볶음, 호박줄기볶음, 호박오가리볶음, 호박지지개, 호박멸치젓지지개, 호박찌개, 호박전, 호박나물, 호박오가리나물, 호박엿, 호박오가리장, 호박장절임, 호박선 등 다양한 호박음식을 만든것은 그러한 실례에 속한다. - 건강약식료리
건강약식료리
조선민족료리는 건강과 장수에 효과적이다.
조선음식을 조리하는데 쓰인 기본재료들은 독이 없고 오래 먹어도 인체에 해가 없는것들이며 그러면서도 약리적효과가 있는것들이다.
찹쌀, 밀, 배추, 물고기, 고기, 참깨, 대추, 생강, 파, 마늘, 은행, 잣, 밤, 호두를 비롯한 낟알, 남새, 고기류, 산나물, 바다풀 등은 일상적으로 주식이나 부식으로도 먹지만 그것들은 고려의학에서 여러가지 병을 고치는데 널리 쓰이는 약재이기도 하였다.
우리 인민은 식품과 약품을 구별할수 없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었으므로 《약식동원》이라고 하여 음식을 약과 같이 리해하여 식생활을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음식은 건강을 증진시키고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리적가치가 매우 높다.
약밥이나 오곡밥은 훌륭한 약리성음식이며 인삼닭곰, 잉어닭곰 등은 강장보혈제로, 김치는 장수식품으로, 오미자차, 배화채, 수정과, 생강차 등은 강심, 강정, 건위제로 효능이 높고 식욕을 돋구어주는 음식들이다. 참나물, 두릅, 도라지, 더덕, 쑥, 미역, 다시마, 김 등 약용식물들이 기본음식감으로도 널리 리용됨으로써 사람들의 건강증진에 적극 이바지하였다.
여러가지 음식감가공때 간을 맞추고 먹기 좋으면서도 맛있게 하기 위하여 쓰이는 양념의 재료 또한 모두 고려의학에서 약재로 귀하게 쓰인것들이였다.
닭찜, 갈비찜을 만들 때 부재료로 흔히 참나무버섯, 밤, 은행, 무우, 다시마 등 식물성식품을 배합하여 음식의 약리적효과를 높였으며 부루쌈을 먹은 다음 흔히 계피차를 달여 마시였는데 그것은 부루가 찬 성질이 있으므로 더운 성질을 가진 계피로 차를 달여 마시고 부루에 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것이였다.
약용식물은 죽이나 술, 당과류, 구황음식 어디에나 풍부하게 정상적으로, 관습적으로 쓰이였다.
조선음식의 종류가 많고 음식맛이 각별히 좋으며 색갈과 모양이 곱고 건강에 이바지한것은 자연을 개조하면서 자연의 좋고 유익한것을 인간생활 특히 식생활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리용하며 음식감들을 여러가지 합리적인 조리방법으로 과학적리치에 맞게 문화적으로, 위생적으로 가공하여 특색있는 음식을 만들며 매개 음식을 우리 인민의 민족적구미와 기호에 맞게 만들려는 우리 인민들의 지혜와 재능, 고심어린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진것이다.
인류발생의 려명기로부터 이 땅에서 살아오면서 인류문명을 개척하여 온 우리 선조들은 음식문화에서도 세상에 자랑할만한 귀중한 조선민족료리유산을 창조하였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우리 민족은 한피줄을 이은 단일민족으로 오래동안 살아오면서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식생활재료를 가지고 자기의 지혜와 기술로 민족적특성과 구미에 맞는 민족음식을 수많이 창조하고 계승발전시켜왔다.
조선료리는 대대손손 민족의 우수한 지혜와 동식물자원을 식용으로 하는 과정에 우리 인민들이 쌓은 풍부한 경험이 합쳐져 이루어진 음식문화의 우수한 창조물이며 자랑이다.
우리의 민족료리는 민족적특색이 짙고 맛과 냄새, 색갈이 독특할뿐아니라 력사가 오래고 높은 영양성과 과학성, 문화성이 보장된것으로 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세상에 알려진 김치, 불고기, 록두지짐, 조선료리의 걸작품 신선로, 유명한 평양랭면과 대동강숭어국, 조선장과 두부, 콩나물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민족음식은 그 모두가 조선사람의 민족적특성과 구미, 기호에 맞을뿐아니라 민족적색채가 짙으며 향토애 풍기는 내 나라, 내 고향의 음식으로서 우리 인민모두의 사랑을 받는 귀중한 민족의 재부이다.
민속명절음식
설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명절이였으므로 사람마다 새로운 기분과 기대를 가지고 명절을 맞이하였다.
지난날 우리 인민들은 설날이 오면 차례(제사)를 지내고 세배하며 설음식을 맛보면서 민속놀이를 즐겨하였다.
설날 새벽에 제사를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것은 웃사람을 존경하는 풍습의 연장으로서 집안의 《번영》과 자손의 《흥》이 조상을 어떻게 위하는가에 좌우된다고 생각한 조상숭배관념에서 나온것이였다.
제상에는 몇가지 음식과 함께 반드시 떡국을 올리였는데 이로부터 설날차례를 《떡국차례》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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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을 전통적인 민속명절로 맞이하였다는 기록은 김제의 시 《약밥》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찹쌀 쓿어 밥지을제 곶감 대추 한데 넣고
하얀 잣 달콤한 술 골고루 섞는다네
집집마다 약밥짓기 이제는 풍속되여
까마귀의 제사대신 조상제사에 드린다네
이 시는 약밥의 유래를 말하는 동시에 정월대보름명절이 세나라시기에 있었다는것을 알수 있게 한다.
대보름날의 독특한 음식으로서는 오곡밥과 약밥, 복쌈, 국수, 나물반찬, 부름깨기, 귀밝이술 등이 있었다.
복쌈은 배추잎이나...더보기
그것은 일군날이 한해농사가 시작되는 첫날이기때문이였다.
이날 농촌들에서는 주로 송편을 만들어먹었는데 이전의 평안도지방에서만은 설기떡을 만들어먹는 풍습이 있었다.더보기
예로부터 3자를 복삼자라고 불러오던 우리 조상들은 3자가 중복되는 날인 3월 3일을 좋은 날로 여겨 이날을 명절처럼 쇠군하였다.
이날에는 화전(꽃지짐), 화면(익힌 록두가루반죽을 가늘게 썰어 오미자물과 꿀물을 타고 잣을 띄운것), 수면(붉은 물감을 들인 록두국수를 꿀물에 만것)을 먹었다.
술은 소국주, 두견주, 도화주, 삼해주 등을 마시였다.더보기
우리 인민이 류두날을 명절로 쇠기 시작한것은 매우 오래전부터였다.
《렬양세시기》에는 고구려때에 사람들이 음식을 갖추어가지고 동쪽에 있는 내가에 나가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며 잔치를 베풀고 즐겁게 놀았다고 기록되여있다.
류두날 음식으로는 어죽, 류두면, 수단, 건단, 수각아, 쉬움떡, 전병 등 이였다.더보기
삼복이라면 한해가운데서 가장 무더운 시기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삼복더위를 피하여 서늘한 곳으로 찾아가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것과 함께 그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먹었다.
우리 나라의 속담에 《더위는 더위로》라는 말도 있듯이 삼복날에 먹는 음식으로는 펄펄 끓는 단고기국이나 삼계탕, 소고기매운탕 등이 기본이였다.
그리고 뜨거운 팥죽과 보리밥에 파국 같은것도 많이 먹었다.
단고기국은 단고기를 푹 삶아 가늘게 찢은것에 보드랍게 다진 단고기가죽과 단고기기름, 푸초, 방아풀, 마늘, 고추가루, 후추가루 등을 두고 끓여 만든 양념장을 얹은 다음 펄펄 끓는 국물을 부어...더보기
옛 속담에 《칠월칠석 수단이요, 팔월추석 송편이다.》고 하였는데 칠월칠석날에 수단을 해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일러왔다.더보기
추석(음력 8월 15일)은 가을철의 대표적인 민속명절이다.
우리 인민들은 예로부터 추석을 풍년농사를 지어놓은 기쁨을 즐기며 돌아간 조상들을 위하여 지성을 표시하는 명절날로 쇠였다.
풍요한 가을철 추석날에 만들어먹는 음식은 그 가지수도 많고 맛도 이채로왔다
추석이 가까와오면 사람들은 햇곡식을 먼저 조상들에게 《맛》보이는 천신을 한다는 뜻에서 올벼를 베여 쌀을 내고 록두, 팥, 콩 등을 마련하여 음식준비를 하였다.
명절음식은 보통 추석전날에 만들었는데 주로 햇곡식으로 만든 떡류와 국, 술과 당과류 등이였다.
추석때 쓰...더보기
우리 나라에서 중구를 명절로 즐긴것은 세나라시기부터였다.
중구절은 국화가 만발하는 계절이므로 온갖 새들이 우짖고 꽃들이 피는 봄날의 삼질날과 같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날에 해먹는 음식들도 모두 국화로 만든 국화지짐과 국화화채, 국화주 등이였다.
중구는 단풍을 즐기는 명절이였으므로 국화지짐이나 국화술외에 다른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먹는것은 없었다.더보기
민간에서는 동지가 음력으로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라고 하였고 초순이 지나서 들면 로동지라고 하였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그해에 애동지가 들면 아이들에게 좋고 로동지가 들면 늙은 로인들에게 좋다고 했다.
이것은 동지날을 작은 설이라고 하여 동지가 며칠간이라도 빨리 들면 어린이들은 빨리 크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좋은것으로 보았고 로인들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것으로 하여 동지가 늦게 들면 그만큼 오래 살게 된다고 생각한데로부터 생겨난 말이다.
그런가 하면 애동지가 드는 해에는 겨울이 춥고 로동지가 드는 해에는 그해 겨울이 춥지 않...더보기
지방특산음식
즐겨찾는 료리들
식생활풍습
- 밥을 주식으로 하고 국과 장, 김...
밥을 주식으로 하고 국과 장, 김치를 부식물로 하는 풍습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인민의 식생활풍습은 우리 나라에서 낟알생산이 위주로 된 이후에 생긴 풍습이라고 말할수 있다.
인류발생의 첫 시기 사람들의 주식물은 자연환경과 생산력에 따라 서로 각이하였다.
산을 낀 지대에서 살던 사람들은 짐승을 잡아먹고 살았다.
바다나 강을 낀 지대에서 살던 사람들은 주로 조개나 물고기를 잡아 그것을 주식으로 하면서 살았다.
신석기시대 이후 식물재배가 확대되고 낟알음식이 주식으로 되면서 낟알은 찧어서 밥 또는 죽을 만들수도 있었고 가루를 내여 떡을 만들어먹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식이 낟알인 경우에도 무엇을 일상음식의 주식물로 하는가에 민족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우리 인민들은 오랜 옛날부터 빵을 주식으로 하고있는 유럽나라들과는 달리 밥을 일상음식의 주식으로 하고 떡은 특별음식으로 삼아왔다.
이러한 식생활관습은 고대, 중세기에는 물론이고 근대이후에도 계승되여왔다.
따라서 밥을 주식으로 하는 관습은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 인민의 고유한 풍습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주식에 따르는 부식물도 민족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우리 민족이 먹는 부식물은 그 종류가 많았지만 그가운데서 기본부식물은 국, 장, 김치이다.
국과 장, 김치를 기본부식물로 하였다는것은 식생활에서 다른 반찬들은 밥상에 놓지 않을수도 있었지만 국, 장, 김치만은 음식구성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상시적인 부식물로 되여있었다는것을 의미한다.
우리 인민의 끼니음식상에서 국은 대접받는 대상에 따라 종류에서는 다를수 있겠지만 상시적으로 빼여놓을수 없는 기본부식물이였다.
국을 기본부식물로 하였던것만큼 그 조미료인 장도 끼니마다 상시적으로 먹어왔다.
전통적으로 구수한 토장국을 밥상의 일등 진미로 여겨온것이라든가 뚝배기에 부글부글 끓인 된장찌개를 언제나 밥상에 곁들이는것은 우리 나라에서의 고유한 식사풍경이였던것이다.
김치도 끼마다 정상적으로 먹는 음식이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물론 그 이전기에도 우리 인민은 고기나 떡, 그밖의 특별음식을 차려놓고 먹는 명절때에도 시원한 김치와 된장국을 빼놓지 않았다.
그렇기때문에 예로부터 김치와 장, 국은 우리 조선의 특색있는 민족음식으로 외국에까지 널리 소문났으며 오늘날에까지도 그 전통이 계승되고있는것이다.
이것은 밥을 주식으로 하고 장, 국, 김치를 기본부식물로 하는 식생활방식이 우리 조선사람들의 고유한 전통적인 식생활관습이라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 음식감을 아껴쓰고 식생활을 깐...
음식감을 아껴쓰고 식생활을 깐지고 알뜰하게 하는 풍습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음식감을 아껴쓰고 식생활을 깐지고 알뜰하게 조직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고구려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음식을 절약하였다는 옛 기록을 통해서도 알수 있으며 식량을 랑비하지 않고 결혼식을 비롯한 대사를 간소하게 한데서도 찾아볼수 있다.
그러나 조선봉건왕조시기 얼마 안되는 량반관료들의 관혼상제는 랑비와 허례허식이 극심하게 동반되였다.
이처럼 랑비하지 않고 절약하면서도 깐지게 식생활을 조직하는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 인민의 식생활풍습이였다.
우리 인민들은 또한 식생활을 항상 깨끗하고 알뜰하게 하였다.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은 비록 가난하였지만 언제나 깨끗하고 정갈한것을 좋아하였으며 알뜰하게 생활해나가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우선 음식을 만드는 장소인 부엌을 깨끗하게 거두었으며 식기류도 윤기나게 닦아 정성껏 다루어 깨뜨리지 않고 오래동안 쓰기에 힘썼다.
때문에 부엌세간을 잘 갖추고 알뜰하고 정성들여 다루는것은 우리 녀성들의 중요한 품성의 하나로 일러왔다.
옛 기록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첫 고대국가인 고조선에서는 생활이 곤난한 농민들까지도 그릇을 갖추어 음식을 먹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깨끗하고 알뜰하게 살림살이를 해나가려는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풍습의 시원을 말해주는것이다.
우리 녀성들은 부엌에서 음식물을 만들 때에는 머리수건을 쓰고 흰앞치마를 깨끗하게 둘렀다.
고구려 안악2호 무덤벽화에 시중드는 녀자의 모습과 감신무덤벽화에 달린옷을 입고 앞치마를 두른 녀자의 차림은 부엌일을 할 때 앞치마를 리용하는 습관이 조선녀성의 전통적인 풍습이라는것을 증명해주는 자료로 된다.
부엌일을 할 때 머리수건을 쓰는것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것을 막으며 위생적으로도 좋았다.
또한 앞치마를 두르는것은 음식을 만들거나 다룰 때 문화위생성을 보장하고 활동하는데 편리할뿐아니라 보기에도 좋았다.
이처럼 수천년전부터 머리수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다음 부엌일을 해온 사실만 보아도 일찍부터 인류문명을 꽃피워온 우리 민족의 높은 문화성을 잘 알수 있게 한다. - 하루 세끼 식사하는 풍습
하루 세끼 식사하는 풍습
사람들이 하루 먹는 끼니수는 로동생활과 그 과정에 소모된 영양을 보충하는데 맞게 정해지고 굳어지지만 빈부의 차이, 로동강도, 계절조건에 따라서도 달라지게 된다.
세계 여러민족들의 하루 먹는 끼니수를 력사적으로 보면 처음에는 일정한 시간관념이 없이 음식감이 생기는데 따라 불규칙적으로 먹기도 하고 일정한 시간간격으로 하루 또는 세끼를 먹기도 했다.
또는 끼니와 끼니사이에 중참이나 간식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먹는 문제해결을 위한 오랜 생활과정을 통하여 하루 먹는 끼니수를 불규칙적인것으로부터 사람의 건강증진에서 가장 효과적인 하루 세끼 식사하는데로 넘어갔다.
인류발생의 첫 시기에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떠돌아다니면서 먹을것이 생기는데 따라 불규칙적으로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씨족을 단위로 점차 한곳에 자리를 잡고 알곡재배를 주업으로 하고 짐승기르기도 적극 진행한 신석기시대이후 우리 선조들은 여유있게 생산하여 일정한 량을 저축, 보관할수 있었다.
그리하여 하루의 일과생활에서도 먹을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면서 불규칙적으로 생활하던 때와는 달리 일정한 생활거처에서 자고 날이 밝으면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일터에 나갔으며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함께 하였던것이다.
이러한 식생활이 오랜 기간 계속되는 과정에 아침, 저녁, 또는 아침, 점심, 저녁 등 일정한 시간간격으로 음식을 만들어먹는것이 습관으로 굳어졌던것이다.
하루 세끼 먹는 식생활풍습은 먹을것이 생기는데 따라 먹던 불규칙적인 식생활에 비하여 특히 인체 특히 위의 부담을 덜어주며 사람들의 건강증진에도 효과적이고 로동생활과 일과조직에도 적당한것이였다.
따라서 하루 세끼 먹는 습관은 일반적인 식생활풍습으로 계승발전되였던것이다.
하루 세끼먹는 풍습은 기록상으로는 세나라시기에 처음 보인다.
이 자료를 통하여 세나라시기에 하루 세끼를 먹었다는것과 함께 그 이전에도 그러한 풍습이 있었으리라는것을 알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하루 세끼 먹었다는 기록자료는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문헌들에도 있다.
고려시기 평양성에서 대대로 살던 황수라는 사람이 여러 자식들과 같이 모두가 한가마밥을 먹고 살았는데 하루 세끼는 맛있는 반찬을 장만하여 먼저 부모에게 드리고 물러나와서 같이 먹었다고 하였으며 조선봉건왕조시기 대부가 하루 세끼밥을 먹었다고 한것은 그 대표적실례이다.
물론 우리 선조들은 낮시간이 짧은 겨울철에는 하루에 두끼 먹는 경우도 있었으며 힘든 일을 하거나 해가 긴 때에는 간식, 중참을 하여 하루 세끼이상 먹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일상적인 식생활풍습에서는 력사적으로 계승되여오던 하루 세끼 먹는것이 기본이였다.
하루 세끼 먹는데서도 아침과 저녁식사를 중시하여 밥을 새로 짓고 국에 여러가지 찬을 차려놓고 먹었다.
그러나 점심에는 아침에 남겨두었던 간소한 찬을 차려놓고 먹거나 국수같은 간단한 식사를 하였다.
따라서 하루 세끼 식사하는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 인민의 고유한 식생활풍습이다. -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민족음료...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민족음료와 그 우수성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민족음료는 오랜 력사를 거쳐 슬기로운 우리 인민의 지혜와 재능에 의하여 창조되고 체계적으로 발전풍부화되여왔다.
전통적인 민족음료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서 찬음료, 더운음료로, 용도에 따라서 보신음료, 보약음료, 간식음료로, 원음식감에 따라서 과일음료, 낟알음료, 남새음료 등으로 나눌수 있다.
민족음료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것으로는 수정과, 식혜, 향설고, 화채, 감주를 들수 있다.
우리 나라의 민족음료는 맛이나 약효, 가공방법, 가지수와 용도 등에 있어서 세상에 널리 자랑할수 있는 우수한 민족음료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의 민족음료는 그 어느 나라의 음료에도 비길수 없는 독특한 맛을 내는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인 민족음료는 어느것이나 할것없이 모두가 원음식감의 특성을 잘 살려 독특한 맛을 낸다.
대표적으로 화채는 생신한 과일 같은것을 리용하여 만들므로 신선하고 산뜻하며 향기로운 맛을 내는것이 특징이다.
딸기화채 한가지만 놓고보아도 딸기즙이 우러나와 발그스레한 색갈이 도는 물우에 딸기편과 잣이 동동 떠서 청신하고 생큼한 향기를 풍기므로 금시 맛보고싶은 충동을 금할수 없게 할뿐아니라 마시면 새큼하고 달큰한 그 맛 또한 더 이를데 없다.
또한 민족음료는 하나와 같이 떫은맛, 쓴맛과 같은 잡맛이 없고 마신 다음에도 뒤맛이 아주 시원하고 상쾌하다.
이와 같은 독특한 맛으로 하여 민족음료는 우리 인민들은 물론 우리 나라에 오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즐겨 찾고있다.
다음으로 민족음료는 약효적가치가 있어 사람들의 건강과 장수에 매우 리로운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민족음료는 약효를 가지고있는 음식감들을 많이 리용하여 만든다.
차 한가지만 보아도 인삼, 보리, 오미자, 찔광이, 구기자 등 약효가 있는 음식감들을 많이 리용한다.
우리 나라의 유명한 인삼차는 피로회복작용, 혈압을 낮추는 작용, 항암작용, 위궤양의 예방치료작용을 비롯하여 정신활동능력을 높이고 질병에 대한 저항성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하기에 우리 나라의 민족음료는 훌륭한 보신제, 보양제로 다른 나라들에도 널리 알려져있다.
전통적인 민족음료는 그 가공방법에 있어서도 높은 과학성이 보장되여있는것이 특징이다.
식혜나 감주만 보아도 밥에 길금물을 두고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만들고 수정과나 향설고 같은것도 음식감을 그 특성에 맞게 온도와 시간을 과학적으로 정하고 세밀하게 가공하여 만들며 세계적으로도 그 연원이 오랜 우리 나라의 술도 밑술을 리용하는 과학적인 가공방법에 기초하여 만든다.
이와 같이 우리 인민들은 일찍부터 민족음료가공에 과학적원리들을 많이 적용하였으며 주변나라들의 음료발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 밥상에 음...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 밥상에 음식을 차려놓고 식사하는 풍습
온돌방에 앉아 밥상에 음식을 차려놓고 온 가족과 함께 따뜻한 음식물을 먹는 풍습은 이미 고대부터 형성되고 공고발전하여온 전통적인것이다.
고대시기에 이미 우리 선조들은 오늘의 문화주택형식과 같은 기둥보식집과 귀틀집에서 온돌난방시설을 갖추어놓고 살았다.
종래의 화독에 의한 난방시설은 움집인 경우에는 일정한 의의가 있었으나 지상가옥에서는 추위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어려웠다.
이런데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집안에 부뚜막을 꾸려놓고 그 열을 허실함이 없이 잘 리용하여 방을 덥히고 안정된 생활을 할수 있는 온돌식 난방을 창안도입하였던것이다.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러 온돌이 전국적으로 널리 보급된 사실들로 보아 온돌방에 밥상을 차려놓고 앉아서 먹는 우리 민족의 풍습은 이미 고대에 형성되고 후세를 내려오면서 공고발전하여온 전통적인 풍습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유래와 일화
- 튀기
튀기
튀기는 고기, 물고기, 남새 등 음식감들을 끓는 기름에 넣고 짧은 시간에 익혀낸 료리이다.
튀기는 기름이 많이 드는 음식으로서 우리 나라에서 식용기름의 력사와 함께 생겨난것이므로 음식감에 밀가루나 닭알물을 씌워 가지고 튀기였다.
고소한 맛과 특이한 향기로 누구나 즐겨하였던 음식이다.
고기튀기에서 대표적인것은 통닭튀기, 꿩튀기, 메추리튀기, 소고기튀기, 돼지고기튀기를 들수 있다.
통닭튀기는 양념장에 재운 닭을 찐 다음 튀기였다.
작은 닭인 경우에는 그냥 기름에 튀겨 내기도 하였다.
생선튀기는 생선을 통채로 또는 토막낸것을 기름에 튀긴것이다.
명태튀기는 그대로 튀기기도 하고 밀가루 또는 닭알물을 씌워서도 튀기였다.
새우튀기도 역시 새우를 껍질을 벗기고 살을 뽑아서 그채로 또는 닭알물을 묻혀서 튀겨냈다.
남새튀기에서는 풋고추튀기, 가지튀기, 감자튀기 등을 일러주었다.
풋고추, 가지, 감자는 썰어 가지고 밀가루 푼 물을 씌워서 기름에 튀겼다.
풋고추튀기는 풋고추를 쪼개서 씨붙은 쪽에만 밀가루물을 바르고 그우에 다시 닭알물을 씌워서 튀기였다.
튀기는 일상생활에서도 만들어먹었지만 명절, 잔치를 비롯한 대사때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였다. - 지짐
지짐
지짐은 원래 소를 넣고 지지였는데 18~19세기경부터 소를 넣지 않고 지진것을 많이 만들어먹으면서 이름은 그대로 지짐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옛날에는 지짐을 《전병》, 《부치기》라고도 하였다.
황해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팥이나 록두소를 넣고 지짐을 지지기도 하였다.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록두지짐, 감자지짐, 밀지짐, 수수지짐, 찹쌀지짐, 팥지짐 등 낟알과 여러가지 음식감을 리용하여 다양하게 만들어먹었다.
이러한 지짐료리는 우리 나라의 고유한 음식미였다.
우리 나라 지짐은 햇곡식이 날 때 물망질을 하거나 이미 있던 가루를 묽게 반죽하여 기름에 지져낸 음식으로서 가공방법이 통속적이고 쉬운것으로 하여 그 어느 가정에서나 흔히 해먹던 대중음식이였다. - 죽
죽
지난날 우리 인민의 식생활에서 주되는 주식물의 하나는 죽이였다.
죽은 낟알을 기본음식감로 만드는데 밥지을 때보다 물을 2~3배 더 두고 끓여 낟알이 푹 퍼지도록 만든 음식이다.
우리 선조들이 죽을 쑤어먹기 시작한것은 알곡재배를 시작한 원시사회부터였으며 밥보다 먼저 먹어왔다고 볼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조선봉건왕조말기까지도 죽은 보편화된 주식으로 되고있었는데 이것은 18세기의 기록에 《길가에서 죽 파는 소리 그칠새 없다》고 한것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우리 나라의 력사기록과 민속자료에서 볼수 있는 죽은 수십여가지가 있었는데 그것들은 조리방법이 다양하고 약리적효과도 높았다.
이로부터 민간에서는 훌륭한 며느리가 되자면 스무가지의 죽을 쓸줄 알아야 한다는 말까지 전해지고있었다.
조선봉건왕조시기 많은 가정들에서 아침에 주식으로 흔히 죽을 먹었으며 로인들속에서는 아침밥을 먹기 전에 죽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은 보양을 목적으로 하는 외에 늙은이와 몸이 허약한 사람이나 병이 있는 사람들의 건강회복을 위한데도 있었다.
죽은 또한 먹기가 편리한데로부터 장례 때 상주들을 위한 음식으로도 쓰이였다.
조선봉건왕조초기 봉건국가가 규정한 《극조오례의》라는 책에도 《장례때 슬픔에 지쳐서 밥을 먹을수 없으니 죽을 먹으라》고 하였고 민간에서는 상가집에 팥죽을 쑤어 보내는것을 미풍량속의 하나로 전해왔다.
죽에는 알곡만으로 쑨 죽과 알곡에 여러가지 음식감로 넣어서 쑨 죽이 있었다. - 깨진 옹기그릇
깨진 옹기그릇
옛날 어느 마을에 자그마한 초가집이 한채 있었다.
이 집에서는 열둬살가량 되는 총각애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늙은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있었다.
어느날이였다.
이웃마을에 갔던 총각애의 어머니는 갓난애기의 주먹만큼한 옹기그릇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다.
《어머니, 그건 뭣하려구 가져왔나요?》
총각애는 어머니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의 할아버지 밥그릇으로 쓰자구 가져왔다.》
어머니의 말에 총각애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옹기그릇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또 입을 열었다.
《요렇게 작은 옹기그릇에 밥을 담아드리면 할아버지가 배고파하시지 않나요?》
아들애의 말에 어머니는 시끄러운듯 한마디 툭 하였다.
《누가 너더러 그런 걱정하랬니? 할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고 늘 방안에 가만 앉아만 있으니 요만큼 잡숴도 배고파하지 않는다.》
그날 저녁이였다.
저녁밥을 다 지은 총각애의 어머니는 작은 옹기그릇에 밥을 담아 아들을 시켜 할아버지에게 드렸다.
손자가 내주는 옹기그릇을 받아든 할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했다.
밥이 담긴 작은 옹기그릇을 든 손은 부들부들 떨리였다.
그 바람에 손에 들었던 옹기그릇이 《쨍가당!》하고 방바닥에 떨어져 박산나고말았다.
총각애는 얼른 깨여진 옹기그릇쪼각들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맞추어보며 할아버지한테 말했다.
《할아버지두 참, 이 옹기그릇을 왜 깼나요?》
총각애는 아쉬운듯 깨진 옹기그릇쪼각들을 만지작거리였다.
할아버지는 손자애를 바라보며 구슬픈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 그릇이 깨진게 그렇게 아쉬우냐?》
총각애는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야참, 이다음에 어머니가 할아버지처럼 늙으면 이 옹기그릇에 밥을 담아주려고 했는데…》
그때 부엌에서 밥을 푸다 아들애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한참동안 아무말도 못하고 멍청히 서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후부터 총각애의 어머니는 날마다 늙은 할아버지한테 무득히 밥이 담긴 밥상을 차려드렸다. - 묵
묵
묵은 메밀, 록두, 강냉이, 도토리 등을 망에 갈아서 얻어낸 농마를 익혀서 식힌 음식이다.
옛날 기록에 의하면 묵은 한자로 《포》라고 씌여있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묵에 여러가지 부음식감을 섞어만든 료리를 좋아하였는데 이것을 《묵채》라고 하였다.
1848년의 《진찬의궤》에 씌여있는 파란록두로 만든 묵채의 부음식감에는 돼지고기, 미나리, 김, 닭알, 고추가루가 들어있다. 《동국세시기》에는 록두묵채를 《탕평채》라고 썼는데 여기에 들어간 부음식감에도 돼지고기, 미나리, 김, 초장이 들어있다.
지난 시기 도토리묵이나 메밀묵, 강냉이묵 같은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점심이나 저녁 한끼 일상음식으로 먹었으나 록두묵 같은것은 명절이나 반가운 손님이 왔을 때 만들어먹는 특별음식의 하나였다.
올챙이묵은 평안도지방의 별식이였다. 풋강냉이철이 되면 강냉이를 따서 작은 구멍이 있는 올챙이묵틀에 넣어서 뽑아내는데 시원한 김치국이나 깨국에 말아먹군 하였다.
성구, 속담
- 밥과 관련한 속담
밥과 관련한 속담
○ 열 사람이 밥 한사발
여러 사람이 각각 조금씩 보탬하는것을 이르던 말.
○ 보리밥에는 고추장이 제격
무엇이나 격에 알맞게 어울려야 함을 비겨 이르는 말. - 떡과 관련한 속담
떡과 관련한 속담
○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보기에 입맛이 당겨야 먹기에도 좋다는 뜻으로 겉모양새를 잘 꾸리는것도 일정하게 필요하다는것을 이르는 말.
○ 떡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
무슨 음식이나 먹어본 사람이라야 더 잘 먹는다는것을 이르는 말.
○ 떡도 떡같이 못해먹고 생떡국으로 망한다.
떡이나 떡국을 채 만들기 전에 망하고 만다는 뜻으로 일을 완성하기 전에 실패를 가져왔음을 비겨 이르는 말.
○ 싫은게 선 떡
① 먹기 싫은데 선 떡을 주니 거절할 구실이 당당하므로 문제될것이 없다는것을 이르는 말.
② 먹기 싫은데다가 또 선 떡까지 내놓았다는 뜻으로 일이 자꾸 꼬여들어감을 비겨 이르는 말.
○ 꽃보다 떡
굶주린 사람은 아름다운 꽃을 보는것보다 떡을 먹는것이 낫다는 뜻으로 먹는 문제가 매우 중요함을 비겨 이르는 말.
○ 입에 맞는 떡
자기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떡이라는 뜻으로 자기 마음에 꼭 들어맞는 사물을 비겨 이르는 말 .
○ 봉화불에 떡 구워먹기
나라에 급한 정황이 생겼을 때 피워 올리는 거세찬 봉화불이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려운데 거기에 떡을 굽고있다는 뜻으로 되지도 않을 일을 어설프게 조직하여 좋은 결과를 바라기 어렵게 된 경우에 비웃어 이르는 말.
○ 떡같이 믿다.
사람이나 어떤 일에 대하여 푹 믿는것을 이르는 말.
○ 떡도 떡이려니와 함이 더 좋다.
떡맛이 좋은것은 물론이려니와 떡을 담은 그릇이 더욱 좋다는 뜻으로 실지 내용도 좋지만 형식이 또한 더욱 훌륭하다는것을 비겨 이르는 말.
○ 떡 먹듯(이) 되다.
어떤 일이 매우 쉽게 된다는것을 비겨 이르는 말. - 알과 관련한 속담
알과 관련한 속담
○ 닭알로 치면 노란자위.
닭알로 말한다면 노란자위와 같다는 뜻으로 《가장 중요한 알맹이부분》을 이르는 말.
○ 닭알에도 뼈가 있다.
일이 잘 안되려면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나도 역시 잘 안된다는 뜻으로 비겨 이르던 말. - 남새 및 나물과 관련한 속담
남새 및 나물과 관련한 속담
○ 큰 호박은 얻어먹고 작은 후추알은 사먹는다.
물건의 가치는 결코 크고 작은것으로 정할수 없는것임을 형상적으로 이르는 말.
○ 된장에 풋고추 박히듯
한곳에 몰박이로 박혀있는 모양을 이르는 말.
○ 오이를 거꾸로 먹어도 제맛
오이를 꼭지가 달린 쓴데부터 먹어도 제맛이란 뜻으로 《남이야 어떻게 하던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상관하지 말라는것》을 이르는 말.
○ 가지 따먹고 외수한다.
남의 밭의 가지를 따먹고 아닌보살하며 속임수를 쓴다는 뜻으로 《나쁜짓을 하고도 시치미를 떼고 딴전을 부림》을 비겨 이르는 말.
○ 삶은 호박에 침박기
① 《일이 아주 헐하고 쉬움》을 비겨 이르는 말.
② 《어떤 자극을 주어도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경우》에 비겨 이르는 말.
○ 호박나물에 힘 쓴다.
① 별치 않은 호박나물을 먹고 힘을 쓴다는 뜻으로 《호박나물이 근기있는 음식임》을 이르는 말.
② 《기껏해야 호박나물이나 먹을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쓰거나 기세를 올리는 경우》에 비겨 이르는 말.
③ 먹은것은 호박나물밖에 없는데 화를 내니 아마도 호박나물때문인가보다라는 뜻으로 《공연히 화를 낸다》를 놀림투로 이르는 말.
○ 호박씨 까서 한입에 넣는다.
한알의 호박씨를 까서 모았다가 한꺼번에 입에 넣어버린다는 뜻으로《힘들여 물건을 조금씩 저축하였다가 한꺼번에 다 소비하였거나 또는 남에게 몽땅 빼앗긴 경우》를 두고 이르는 말. - 국수와 관련한 속담
국수와 관련한 속담
○ 국수 먹은 배
먹은 음식이 쉽게 꺼지는 경우를 두고 이르는 말.
○ 국수를 먹다.
《결혼식을 하다》를 에둘러 이르는 말.
○ 수제비 잘하는 사람이 국수도 잘 한다.
솜씨있게 수제비국을 잘 끓이는 사람은 국수 또한 솜씨있게 잘 만든다는 뜻으로 《한가지를 잘하는 사람은 그와 비슷한 다른 일도 다 잘한다는것》을 비겨 이르는 말.
○ 더운 국에 국수사리 풀어지듯
더운 국에 국수사리가 쉽게 풀어지는것처럼 《무슨 일이 쉽게 되여감》을 비겨 이르는 말.
○ 국수집 식초병 같다.
《한자리에 붙어있지 못하고 자주 왔다갔다 하는것》을 비겨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