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류관
- 첫페지
- 봉사단위들
풍치 아름다운 대동강기슭의 옥류벽우에 푸른 합각지붕을 높이 쳐들고서있는 옥류관은 이름난 평양국수를 잘 하는것으로 하여 내외에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주체49(1960)년 8월 13일에 개관된 옥류관은
옥류관의 평양랭면은 시원한 국수물과 국수사리의 독특한 향기와 구수한 맛으로 하여 우리 인민들은 물론 식성이 다른 외국손님들까지도 한번 맛보고는 《천하별미》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고있습니다.
옥류관은 평양랭면을 기본으로 봉사활동을 벌려 세상에 널리 소문난 대중봉사기지로 자기의 명성을 떨치고있습니다.
옥류관의 일화
- 특별인상
특별인상
몇해전 어느날 자본주의나라의 한 기자가 옥류관을 돌아보며 취재를 한적이 있었다.
(세상에 소문난 조선의 옥류관에서 제일 인상적인것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 기자로 말하면 세계적으로 이름난 대상들을 골라가며 취재를 하면서 자기가 가장 인상깊다는것만 《특별인상》으로 소개하군 하는 취미가 있었다.
그러다나니 다른 사람들이 그 아무리 요란하게 떠든 대상도 그에 의하여 여지없이 부정되는 경우가 수다하였다.
해당 부문으로부터 그 기자의 이러한 특징에 대해 초보적으로 알고있는지라 옥류관일군들은 그의 취재과정을 지켜보며 몹시 궁금해하였다.
(자본주의나라의 탐방기자인 그가 우리 옥류관에서 느끼게 될 《특별인상》은 무엇일것인가?)
옥류관에 도착하여 먼저 조선식건물의 아름답고 황홀한 외경을 찍을 때 감탄하는 그 기자의 표정을 보면서 일군들은 그것은 아마 세계적인 걸작인 옥류관건물일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련이어 각이한 크기의 식사실들과 연회장, 바깥대, 휴계실들을 돌아볼 때의 인상을 보니 그것도 아닌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기자가 옥류관에서 받은 가장 인상깊은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시간이 갈수록 이런 의문이 자꾸만 생기는 속에 어느덧 취재가 끝나 드디여 그 기자가 자기의 특종보도감을 발표할 때가 되였다.
그는 우리 일군들에게 감동어린 목소리로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옥류관을 돌아보고 느낀것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인상깊은것은 국가연회장까지 개방하면서 대중봉사를 하고있는것이다. 다른 나라에도 호화로운 식당들이 많지만 국가연회장까지 리용하여 하루 1만명이상 봉사하고있는 식당을 나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가 급양봉사분야에서도 훌륭히 실현되고있음을 나는 옥류관을 통하여 잘 알수 있었다.》
우리 옥류관에 대한 자본주의나라 기자의 《특별인상》, 그것은 인민을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존재로 여기시는위대한 장군님 의 숭고한 인민관에 대한 뜨거운 격찬이였다. - 서방건축가의 착오
서방건축가의 착오
옥류관증축공사가 끝난 후 우리 나라에 프랑스의 이름있는 한 건축가가 왔던적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건축분야에서는 제노라고 하는것이 유럽사람들이지만 그 건축가의 경우는 도수가 지나칠만큼 코대가 높았다.
자기는 어떤 건물이든지 한번 보기만 해도 투자된 자재와 자금, 로력은 물론 건물의 가치까지 정확히 판단하는 비상한 건축학적감각이 있다고 자랑하였다. 그런 그가 옥류관을 보고나서 우리 해당 일군과 이런 대화를 하였다.
건축가: 듣던바대로 당신네 옥류관은 참으로 훌륭하다. 이런 집을 6개월동안에 완공했다는데 그것이 사실인가?
우리 일군: 본관을 짓는데는 6개월이 걸렸으나 두채의 별관을 짓는데 는 2개월밖에 안걸렸다.
건축가: 그것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 일군: 무슨 근거로 그렇게 부정하는가?
건축가: 세가지 근거다. 첫째로 이 건물이 평지에 지은 집이라면 혹 그렇게 말할수도 있겠지만 물밑에 기초를 쌓고 바위등우에 올려짓는 집은 시공이 까다로와 그렇게 빨리 지을수 있다는것은 건축학적으로 도저히 성립될수 없다. 물의 도시로 불리우는 베네찌아의 유명한 식당은 3년이 걸렸다. 둘째로 이 건물이 규모로 보나 형식과 내용으로 보나 대단히 방대하고 현대적이기때문이다. 카나다 본따리오주 키쉬너에 있는 술집 《률즈로드하우스》는 길이가 103.6m인데 그것을 완공하는데는 근 10년이 걸렸다. 셋째로 건물의 가치때문이다. 사실 이것이 기본조건이라고 볼수 있는데 세계에서 제일 큰 방코크의 《텀은나크》식당은 부유특권층들이 리용하는것인데도 3~4년이 걸렸다. 그런데 당신네 옥류관은 일반주민들용이라고 하는데 무슨 힘으로 그런 투자를 할수 있겠는가?
…건축가의 고집스러운 이 주장은 도무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후 서해갑문을 참관하여 20리 날바다를 가로막아 아득히 뻗어나간 언제와 5만t급의 대형짐배들이 마음대로 드나들수 있는 현대적인 갑문설비들을 돌아보고와서야 그는 비로소 자기의 착오를 인정하게 되였다.
《솔직히 말해서 당신들이 옥류관증축공사를 두달동안에 끝냈다고 했을 때 나는 그것을 믿지 않았댔다. 그런데 나는 오늘 그것이 충분히 가능한것이였다는것을 확신하게 되였다. 민중중심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건설에서도 거인의 힘을 지닌 강국이라고 해야 옳을것이다.》
그러면서 서방의 그 건축가는 20세기 후반기의 세계건축사는 조선을 중심으로 하여 씌여져야 할것이라고 말하였다. - 낚시대를 버리고 온 낚시군
낚시대를 버리고 온 낚시군
이 일화는 옥류관 건너편 동평양지구 문수거리의 살림집에 살고있는 어느 한 가정에서 있은 이야기이다.
그 집의 세대주는 맡은 일도 잘하지만 소문난 낚시애호가였다.
얼마나 지독한 낚시질군인지 일요일은 물론 매일 새벽마다 대동강에 나가 옥류관을 바라보며 한두시간씩 낚시대를 드리웠다 출근해야 직성이 풀리군 하였다.
《내 일생의 복으로 여기는것은 대동강가에서 사는것이고 제일 소중히 여기는것은 낚시대요.》
이렇게 말하는 그를 두고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안해보다도 낚시대를 더 귀해한다고까지 했겠는가.
주체77(1988)년 6월초 그는 멀리 북방으로 장기출장을 떠났다가 8월 말경에야 돌아왔다.
한 두달반동안의 출장기간 낚시질을 못해 몸살이 나 하던지라 저녁차로 집에 도착한 즉시 소중히 보관하였던 낚시대를 꺼내 손질해놓았다.
마침 다음날이 일요일이여서 이른새벽 정든 대동강에 나가 옥류관을 마주앉아 낚시대를 드리우고 고기를 낚아낼 때의 그 쾌감을 어떻게 다 표현할수 있겠는가.
시간가는줄 모르고 낚시질에 여념이 없던 그가 미끼를 바꾸고 낚시를 강우에 던지던 순간 이게 어인 일인가.
밝아오는 새벽노을가에 바라보이는 강건너편의 옥류관의 모습이 달라진것이였다.
(옥류관이 저렇게도 커질수가 있는가?)
낚시질에 너무 열중한탓에 눈의 삭막현상이 온것이 아닌가 하고 두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으나 역시 옥류관이 《량날개》를 편것은 분명하였다.
《거 참 이상하다. 지금껏 보아오던 옥류관인데 지금은 량쪽에 똑같은 건물이 더 생겨났으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느라니 자기가 마치 환상소설에 나오는 광경을 목격하는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하였다.
영문을 풀어보려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야 아직은 강가에 누구 하나 얼씬하지 않는다.
더는 참을수가 없어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가 아직 잠자리에 있는 안해를 무작정 일으켜세웠다.
《여보, 내 눈이 잘못됐는지 당신이 좀 보아주오.》
《뭘 말이예요.》
그는 아직 잠에서 깨여나지 못한 안해를 무작정 창가로 끌고갔다.
《저기 저 옥류관말이요. 당신의 눈에도 크게 보이오?》
그제서야 남편의 소동을 알게 된 안해는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지었다.
《참, 당신이 출장간 사이에 옥류관이 증축되였어요. 량쪽에 별관을 지었지요.》
《뭐 별관? 아니 그럼 내가 출장간 사이에 저 건물이 세워졌단말이요?》
도무지 리해할수 없는 현실앞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있는 남편에게 안해가 물었다.
《아니 그런데 당신 물고기는 잡았어요? 낚시대는 어쨌어요?》
그제서야 비로소 제 정신이 든 낚시질군은 너무도 꿈만같은 사실에 그만 자신을 잃고 그처럼 즐기던 새벽 낚시질도, 그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낚시대도 다 버리고 왔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 상상밖의 일
상상밖의 일
주체98(2009)년 3월 1일 어느 한 제철소 용해공이 옥류관식사에 초대되였다.
그 용해공으로 말하면 소문난 혁신자인데 쇠물이 이글거리는 로앞에 서면 일제끼는 솜씨가 마치 무대우의 무용수 한가지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일은 잘하는데 감성적인 측면에서는 좀 뜬 약점이 있었다.
노래를 부르라면 펄쩍뛰며 달아나고 극장구경도 잘 가지 않았다.
언제인가 직장예술소품공연의 배경대로 세운적이 있었는데 너무도 인상이 굳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적도 있었다.
물론 이것은 그가 옥류관에 왔다간 후에 알게 된 사실들이다.
그런데 옥류관에서 실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고기쟁반국수 한그릇을 단숨에 먹고 련이어 두번째그릇을 제끼고 난 그가 갑자기 흥이 나서 시를 읊는것이였다.
자기가 태여나 처음으로 고기쟁반국수를 맛보게 된 심정을 토로하는것인데 시구절을 보나 내용으로 보나 전문시인도 무색케 할 정도였다.
그중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
쟁반 쟁반 고기쟁반
천하제일 진미 옥류관고기쟁반국수
한그릇은 성차지 않아
세그릇은 욕심이 많다고
흉을 볼것 같아
두그릇만 신청하노라
아, 이 은혜, 이 사랑 안겨준
어머니 당,어버이장군님 께
내 마음속 내 심장속에
고이고이 간직된 충정의 마음담아
감사의 인사를 삼가 드리노라
…
순간 함께 왔던 사람들속에서는 놀라움의 파도가 일었다.
《아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정말 상상밖의 일이로구만!》
사랑의 옥류관고기쟁반국수가 그처럼 무뚝뚝한 용해공의 감성을 폭발시키게 하는 기적을 창조한것이였다.
지금도 옥류관의 감상록에는 그날 그가 쓴 즉흥시가 기록되여있다. - 《옥류관국수맛 참 좋시다》
《옥류관국수맛 참 좋시다》
옥류관가까이에 국수를 무척 즐기는 전쟁로병이 살고있었다.
그가 국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하루 세끼 국수를 먹어도 물리는 법이 없었다.
그러던 그가 옥류관국수를 맛본 다음부터는 국수타발이 시작되였다.
다른 국수만 들여오면 웬일인지 먹지는 않고 《옥류관국수맛 참 좋시다.》하고 흥얼거릴뿐이였다.
며느리가 들으라는것이였다.
그러면 시아버지에게 지극한 며느리가 제꺽 옥류관국수를 받아오군 하는데 먼저 육수물부터 쭉 들이키고나서 《어, 육수물맛 참 달고 시원하다.》하고 기분좋게 한마디 하였다.
국수 두그릇을 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말끔히 비우고 난 그의 입에서는 흥에 겨운 《옥류관국수맛 참 좋시다.》의 가락이 흘러나왔다.
먹을복을 타고난 모양인지 옥류관이 옆에 있는것이 천만다행이였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매일같이 옥류관국수를 받아온다는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아무리 고급식료품을 가지고 국수를 만들어도 시아버지의 입은 귀신같이 옥류관국수가 아닌것을 가려내는것이였다.
며느리가 궁리끝에 김치도 남의 집 김치라면 덮어놓고 좋아했다는 옛날 《배나무집 김첨지》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냈다.
어느날 옥류관주방에 찾아가 딱한 사정을 터놓고 강의까지 받고 온 며느리는 메밀가루를 얻어다 국수를 눌러 고기꾸미와 조미료를 듬뿍 놓아가지고 시아버지에게 가지고 들어갔다.
《아버님, 옥류관국수를 받아왔습니다.》
《오냐, 고맙다.》
기분 좋아하며 상을 마주한 시아버지를 가슴을 조이며 지켜보고있는데 웬걸 육수물맛을 좀 보더니 쓰겁게 입맛을 다시며 《옥류관국수맛 참…》 하고 시작되는것이였다.
다급해난 며느리가 하는수없이 옥류관으로 달려가 국수를 받아오면서 주방일군들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하였다.
《정말 옥류관국수가 얼마나 유명한지 도무지 흉내조차 낼수 없구만요.》
그후 며느리가 정성을 다하여 옥류관국수와 꼭같은것을 만들어 마침내 시아버지가 그것을 먹기는 하였지만 흥겨운 《옥류관국수맛 참 좋시다.》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 《힘들게》 먹은 고기쟁반국수
《힘들게》 먹은 고기쟁반국수
아마 옥류관 고기쟁반국수를 힘들게 먹었다고 하면 누구도 곧이 들으려고 하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이 일화는 실재한 사실에서 생겨난것이다.
옥류관에서 고기쟁반국수를 처음으로 봉사하기 시작하던 어느날에 있은 일이다.
드넓은 옥류관의 식사실에 아이들로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각계층 손님들로 꽉 찼는데 모두가 식탁에 놓인 난생 처음인 고기쟁반국수를 보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번쩍거리는 놋쟁반에 매끈매끈한 발로 사려놓은 국수며 무둑히 담긴 닭고기와 닭알, 보기에도 군침이 도는 양념장...
접대원처녀가 고기쟁반국수는 옛날 왕궁에서 먹던 음식이였다는것과 먹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준 다음 차례로 육수물까지 부어주는것이였다.
한 로인이 기분이 붕 뜬김에 접대원처녀들을 보고 한마디 하였다.
《그러니 궁궐같은 옥류관에서 궁중국수를 먹는 나는 왕이고 나를 접대해주는 저 고운 처녀들은 궁녀인셈일세.》
그러자 장내에는 정말 그렇다는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식사가 다 차례지자 접대원처녀가 얼굴에 함뿍 웃음을 담고 말하였다.
《손님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앞에 놓여있는 고기쟁반국수는아버지장군님 께서 그처럼 어렵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마련해주신 사랑의 국수입니다.장군님 의 그 은정을 잊지 말고 고기쟁반국수를 어서 맛있게 드십시오.》
식사시작이 선포되였건만 어인 일인지 장내에는 국수를 먹는 즐거운 소리대신 숭엄한 기운속에 고요만이 흘렀다.
접대원처녀들이 어서 맛있게 들라고 거듭 권하였지만 모두가 식탁앞에 놓인 고기쟁반국수만을 물끄러미 바라볼뿐 누구도 선뜻 수저를 들지 못하는것이였다.
이때 문득 한쪽식탁에서 《아,어버이장군님… 》 하는 울먹이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자기를 《왕》이라고 자처하던 로인이 터뜨린 감정의 폭발이였다.
순간 장내에는 격정의 파도가 일었다.
한 조선인민군 군관은 그때 고기쟁반국수를 먹던 때의 자기 심정을 감상록에 이렇게 썼다.
《현대적으로 꾸려진 그 이름도 유정한 <옥류관>에서 뜻이 깊고 지성깃든 고기쟁반국수를 목이 메여 정말로 <힘들게> 먹었습니다. 인민에 대한 위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내 나라, 우리 조국에서만이 있을수 있는 이런 진미를 우리 군인들은 가볍게 절을 들지 못했습니다. 옥류관봉사자동지들!장군님 사랑을 전달해주는 동지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동방의 신비한 료리》
《동방의 신비한 료리》
이딸리아에서 공산당기관지 《우니따》창간 100돐을 기념하는 축전이 열렸을 때였다.
위대한 장군님 께서는 이딸리아공산당의 축전행사를 도와주시기 위하여 그 나라에 당대표단과 함께 급양봉사단을 파견해주시였는데 옥류관료리사들도 속해있었다.
이딸리아라고 하면 세계적으로 식료공업과 음식업이 발전한것으로 손꼽히는 나라였다.
식성이 까다로와 웬만한 음식은 후하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 나라에서 생소한 우리의 민족음식이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겠는지?
그 나라 수도에 도착한 옥류관료리사들은 머리속에 갈마드는 이런 위구심을 지워버릴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십개 나라의 이름난 음식업체들이 요란한 광고를 내붙이고 치렬한 경쟁을 벌리는 그 마당에서 우리의 특산료리인 신선로가 커다란 인기를 모아 식당이 밤낮으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처음에 우리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나온 손님들이 둘째손가락을 볼에 대고 빙빙 돌리는것을 보고 의아쩍게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둘째손가락을 볼에 받치고 빙빙 돌리는것은 《잘 먹었다.》, 《맛이 좋다.》는 뜻을 나타내는것이라고 하였다.
《코레아!》, 《신선로!》
음식을 맛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격찬하였고 그 나라의 신문과 TV방송들도 《동방의 신비한 료리》, 《후회하지 말고 꼭 맛보시라!》 등의 제목을 달고 신선로를 세계최상의 료리로 평가했다.
유럽문명의 발상지로 자처하는 로마의 한복판에서 이러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우리 일군들과 료리사들은 신선로를 조선료리의 걸작품, 대표작으로 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신위대한 장군님 의 자애로운 모습이 눈앞에 어려오면서 흥분과 격정을 누르지 못하였다. - 세계1등급의 료리
세계1등급의 료리
주체53(1964)년 6월 23일 옥류관에서는 외국손님들을 위한 위한 성대한 연회를 차리게 되였을 때였다.
이 연회에는 34개 나라 대표단성원들이 참가하게 되여있었다.
식성은 나라마다 서로 다른데 그들에게 다같이 만족을 주자면 어떤 료리를 만들어야 하는가?
옥류관의 일군들과 봉사자들은 연회를 100% 조선료리를 내는 방법으로 보장할것을 다짐하고 그 준비를 다그쳤다.
이날의 연회탁은 음식의 종류와 질 그리고 료리장식에서 나무랄데 없는 연회상이였다.
신선로, 평양랭면, 약밥, 소갈비국, 숭어찜, 칠색송어튀기에다가 료리품평회에서 당선된 구절판까지 오르다보니 말그대로 산해진미를 다 갖춘셈이 되였다. 음식의 종류는 또 얼마나 다양한가.
술만 놓고보아도 개성의 특산품인 인삼술, 삼로주, 수삼로주를 비롯하여 감홍로, 백로술, 강계포도주, 들쭉술, 대평술, 양덕술, 인풍술, 과일술, 딸기술, 뱀술 등 15가지가 올랐고 여기에 맥주, 사이다, 배단물, 오미자단물을 비롯한 청량음료까지 합치면 20가지가 넘었다.
풍치 아름다운 대동강반의 옥류관에서 푸짐한 조선료리를 맛본 외국의 수많은 대표단성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1등급의 료리》, 《종류가 다양하고 맛이 독특한 료리》, 《먹기도 좋고 보기도 좋은 료리》 등등…
외국손님들은 이런 말을 하며 밤이 깊도록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이날의 연회는 우리 나라가 민족료리를 발전시키는데서도 단연 앞서나가고있다는것을 보여준 뜻깊은 행사였다. - 준비실에서 일어난 소동
준비실에서 일어난 소동
옥류관의 준비실은 위생상 외부인원출입이 철저히 금지되여있다.
그런데 언제인가 이 질서를 어기여 소동이 일어난적이 있었다.
점심식사봉사로 접대원도 주방성원들도 한참 붐비는 속에 지방에서 온 웬 나이지숙한 녀인이 준비실로 불쑥 들어왔던것이다.
《아니, 어머니, 여기에 어떻게 들어오셨습니까?》
《응, 그릇을 어떻게 가시는가 한번 구경을 하자고 하네.》
《아이 참 어머니두, 여기는 들어오면 안됩니다.》
《안된다니? 그저 여기 서서 보기만 하면 되네.》
접대원들이 아무리 바빠맞아해도 녀인은 무사태평이였다.
사연인즉 이렇게 된것이였다.
지방에서 오래간만에 딸네 집에 나들이온 녀인이 그날 옥류관고기쟁반국수를 먹으러 왔다.
희한하기 그지없는 대연회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입을 다물지 못하던 녀인은 단번에 수백그릇씩이나 국수를 봉사하는것을 보고는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도대체 저 숱한 그릇들은 어떻게 가셔낼가?)
한집안 식구의 식사를 보장하자해도 그릇을 가시는 품이 어떤가를 매일 체험하는 가정주부의 심정에서 나오는 의문이였다.
머리속에 갈마드는 호기심을 누를수 없었던 녀인은 저도 모르게 국수그릇을 가득 실은 밀차를 따라 준비실에까지 들어오게 되였던것이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녀인의 심정을 충분히 고려하여 접대원들은 배식구를 통해 구경할수 있도록 관례에 없는 《특혜》를 베풀기로 하였다.
그리고 옥류관주방설비에 깃들어있는어버이장군님 의 은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현대적인 최상의 주방설비들에서 수백기의 그릇들이 순식간에 깨끗하게 세척되고 소독까지 되여 나오는것을 보는 녀인의 입에서는 찬탄의 목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세상에 이렇게 희한한 식당이 있단 말인가. 이게 다 인민들을 위해 마련된것이라니 정말 우리장군님 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을 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