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로는 고급하고 다양한 음식감, 상차림을 돋구는 호화롭고 흥미를 자아내는 그릇, 먹음직스러운 료리의 예술적꾸밈새, 끓는 음식감이 어울려 안겨오는 상쾌하면서도 후더분한 느낌 등으로 하여 조선료리의 걸작품으로 일러온다. 신선로는 우리 인민이 산해진미를 한번에 맛볼수 있게 꾸며놓은 희귀한 음식이다. 신선로를 만드는데는 소고기, 해삼, 왕새우, 떡국대, 밤, 대추, 호두, 잣 등 수십여가지의 음식감들이 쓰인다. 조선료리가운데서는 신선로가 음식감의 가지수에 있어서 단연 첫 자리를 차지한다고 할수 있다. 매 음식감을 1차가공한 다음 다시 종합가공하는 신선로는 그것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음식이 그대로 먹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맛이 좋고 향기로운데다가 차림새 또한 화려하고 먹음직스러운것이 참으로 조선음식의 진미를 맛볼수 있게 하는 료리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신선로를 《열구자탕》 즉 입을 기쁘게 해주는 탕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불러왔다. 신선로는 본래 음식을 끓이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그릇이름인데 이것이 점차 그안에 끓인 음식의 이름으로도 되였다. 신선로의 유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연산군이 조선봉건왕조 10대왕으로 있을때 일이다. 당시 시와 문장을 잘 짓는다는 정희량이라는 선비가 있었는데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은거생활을 하였다. 산속에서 생활하면서 그는 기묘한 형태의 화로를 만들어 매일 허리에 차고다니면서 여러가지 산짐승을 잡거나 산나물을 채취하여 화로에 넣고 끓여먹으며 살았는데 그의 모습이 마치 신선과 같다고 하여 그가 끓여먹은 음식을 《신선로》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지고있다. 어느날 어떤 사람이 깊은 산속에서 사는 정희량을 만나 음식대접을 받았는데 그에게는 정희량의 생활이 《신선의 생활》같이 느껴졌고 더우기 대접받은 음식맛이나 그것을 끓이는 화로의 모양이 매우 신비스럽게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정희량과 만났던 이야기를 여기저기에 퍼뜨리고 산에서 보았던것과 꼭같은 화로를 만들어 음식을 해먹으면서 그것의 이름을 신선이 쓰는 신비한 화로라는 뜻에서 또 신선이 먹는 신비스러울 정도로 맛좋은 음식이라는 뜻에서《신선로》라고 지었다고 한다. 력사기록들에 의하면 지난날 신선로는 궁중음식의 하나로, 량반귀족들이 먹는 음식의 하나로 되여있었으며 지역적으로는 개성을 비롯한 중남부지방사람들이 주로 만들어먹었다. 조선봉건왕조시기 해마다 여러차례에 걸쳐 진행되군 하던 궁중연회들에는 반드시 신선로가 올랐으며 그 종류도 탕신선로, 면신선로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궁중연회음식의 하나로 되여있던 신선로는 점차 봉건량반들의 가정에 펴져나가 그들의 식탁에도 오르게 되였고 나중에는 비교적 살림이 넉넉한 가정들에서도 간혹 만들어먹었다. 신선로는 정말로 진귀하고 품위있는 음식인것으로 하여 지체높은 량반들도 년중 몇번 먹어보지 못하였다. 먹어보았다고 해야 명절가운데서도 제일 큰 명절로 여겨온 설날이나 생일 60돐과 같은 큰 가정대사때였을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해삼과 왕새우와 같은 질좋은 해산물이 많아 진짜 신선로가 나올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신선로가 그렇듯 유명해지게 된것이다. 신선로는 맛이 좋을뿐아니라 많은 영양소들을 골고루 함유하고있어 건강과 장수에 좋은 음식으로 일찍부터 명성이 높았다. 또한 그릇이 우아하고 특이한 모양새를 가지고있으며 음식감이 아기자기하고 다채로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며 직접 끓이면서 먹기때문에 소화흡수에는 물론 위생문화적으로도 매우 우월한 음식이다. 신선로는 여러 사람들이 같이 또 나누어먹게 만든 음식이므로 신선로를 내는 상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따로따로 떠놓고 먹을수 있게 작은 보시기와 숟가락을 함께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