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은 우리 선조들의 창조적지혜와 근면성이 낳은 우수한 발명품의 하나이다. 옛날에는 《골동반》 또는 《화반》이라고도 하였는데 여기서 《골동》은 오래되였거나 미술적으로 값있는 오래된 도구나 기물인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음식을 섞은것이라는 의미이며 《화반》은 밥우에 얹은 가지가지 음식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것이 그야말로 꽃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헌상으로는 비빔밥이 1800년대말기의 《시의방》에 처음 나오지만 리용되는 음식감들과 만드는 방법이 매우 구체적이고 또 일찌기 밥이 우리 인민들의 기본주식으로 되여있었다는 사정을 놓고볼때 상당히 오래전에 우리 인민들의 식생활에 등장한 음식이라는것을 알수있다. 옛날부터 비빔밥은 반병두리(양푼과 모양이 같으나 썩 작으며 뚜껑이 있는 놋그릇의 한가지)나 대접에 담아 나박김치와 따끈한 장국을 곁들여 먹는것이 상례로 되여있었다. 여러사람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할 때 남이 먹는 비빔밥이 더 맛있어보여 한술두술 나누어먹다가 《함께 비비자》고 밥을 모아 비비는 경우도 있었는데 여러가지를 넣고 함께 비빈 밥을 너도나도 떠서 먹는 기분은 참으로 좋았다고 한다. 그만큼 비빔밥은 정답고 소탈한 느낌을 갖게 하는 소박한 음식의 하나이다. 비빔밥이 생겨나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전해지고있다. 하나는 우리 인민의 근면한 로동생활과정에 생겨난 음식이라는것이다. 옛날 우리 농민들은 봄철의 씨붙임때면 아침새벽부터 별이 뜰 때까지 논밭에서 부지런히 일하였다. 그리하여 농가의 아낙네들은 씨붙임때에는 남정들의 점심식사와 새참을 싸들고 들로 나가군 하였다. 그런데 음식을 나르는 아낙네들에게 걱정스러운것은 밭길을 걸을 때 그릇에 담은 찬들이 쏟아져 흩어질수 있는것이였다. 그래서 생각한것이 바로 오늘날에도 비빔밥으로 불리우는 이 음식이였다. 아낙네들은 옹배기같은 그릇에 밥을 담고 그우에 여러가지 찬들과 고추장을 올려놓은 다음 그 밥그릇을 광주리나 바구니에 넣고 들로 나갔는데 이렇게 하니 밭길을 걸을 때 크게 근심하지 않아도 되였을뿐아니라 밥과 찬을 비벼먹는것 또한 별맛이였다. 이렇게 생겨난 비빔밥은 점차 훌륭한 민족음식으로 발전하게 되였다. 다른 하나의 설은 우리 인민들이 한해의 마지막날인 섣달그믐날저녁에 1년을 무사히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묵은 음식이 해를 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모두 모아 한그릇에 담아 먹던 관습으로부터 비빔밥이 나왔다는것이다. 어느 설이나 다 우리 인민들과 주부들의 영특하고 깐진 생활기풍이 엿보이는 이야기이다. 비빔밥은 어느 지방에서나 다 만들어먹었지만 특히 이름난것은 해주, 진주, 전주지방의 비빔밥이였다. 해주지방의 별식으로서 해주교반, 골동반이라고도 불리운 해주비빔밥은 다른 지방의 비빔밥과 만드는 방법은 비슷하였으나 특이하게 수양산의 고사리와 이 지방에서 많이 나는 김을 섞어 만드는것으로 하여 유명하였다. 진주비빔밥은 다른 나물이나 반찬과 함께 고기회를 밥우에 올려놓고 선지국(소피를 넣고 끓인 국)을 반드시 같이 내는 특색있는 음식이다. 전주비빔밥은 3년 묵은 장, 콩나물과 함께 닭알을 까서 얹고 기름기를 모두 걸러낸 소대가리국물로 밥을 비비는것으로 하여 해주나 진주의 비빔밥과 마찬가지로 이채를 띠는 지방음식으로 손꼽히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