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우리 나라의 특색있는 발효식료품으로서 불고기, 록두지짐과 함께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장수식품의 하나이다. 김치는 조선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부식물이다. 우리의 민족음식구성에서 밥이 주식물을 대표한다면 김치는 부식물을 대표한다고 말할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은 추운 겨울이면 뜨끈한 온돌방에서 시원하고 쩡한 김치국물에 국수를 말아먹는것을 제일로 여겼을뿐아니라 무더운 여름철에 땀을 들이고 입맛을 돋구는데도 김치를 으뜸가는 음식으로 여겨왔다. 우리 인민들은 기름진 고기를 먹으면서도 꼭 김치를 같이 먹었으며 떡이나 지짐을 먹으면서도 김치국물을 마시기 좋아하였다. 조선사람에게는 뭐니뭐니해도 김치가 제일이다. 우리 민족의 뛰여난 슬기와 지혜의 산물인 김치는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다. 력사적으로 보면 우리 나라에서 김치는 세나라시기 이전부터 있었던것으로 짐작된다. 단군조선의 건국설화에 마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우리 나라의 첫 봉건국가였던 고구려의 건국시조 고주몽이 건국초기에 비류수강가에 남새잎이 떠내려오는것을 보고 그 웃쪽에 사람이 사는줄 알고 찾아올라갔다는 기록은 우리 인민들이 고대에 이미 적지 않은 남새를 재배하고있었다는것을 말해준다. 또한 세나라시기 고구려에서 술, 된장, 젓갈과 같은 발효식품들을 식생활에 널리 리용한 사실은 당시 식품의 저장 및 양조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있었으며 우리 인민들이 일찍부터 남새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가공할줄 알았고 소금에 절여서 만든 김치와 같은 저장음식들도 널리 만들어먹었음을 알수 있게 한다. 우리 나라에서 김치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고려시기에 처음 보이는데 이 시기에는 고추가 재배되지 않았으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김장은 고추를 넣지 않은 동치미였을것이다. 김장풍습이 있었다는것은 이 시기 김치가 일반가정들에서 보편화되여있었고 특히는 겨울철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음식의 하나였다는것을 말해준다. 자료에 의하면 고려시기에는 어장고, 침장고(간장, 된장, 김치를 만들어 보관해두는 창고)를 만들고 김치를 대량적으로 생산하였다고 한다. 《리조실록》에서는 1409년에 김장고를 설치하였다고 하였으며 《삼봉집》에는 고려때의 풍습에 따라 료물고(소용되는 물건을 넣어두는 창고)를 설치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이 료물고는 남새류와 그 가공품을 두는 곳이기때문에 김장고의 전신이라고 볼수 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러 김치는 더욱 발전하였다. 특히 17세기에 고추가 재배되면서 이때부터 오늘의 김치와 비슷하게 여러가지 양념이 고루 들어간 다양하고 특색있는 김치들이 만들어지게 되였다. 《규합총서》, 《산림경제》등 민족료리고전에 기록된 김치의 종류는 무려 수십여종에 달한다. 여러 기록들에는 김치를 《침채》, 《침장》, 《짠지》, 《싱건지》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서술하였다. 여기서 《침채》는 텁텁한 김치이고 《침장》은 소금물에 담그어 저장한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였다.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김치, 김장은 바로 이 《침채》, 《침장》이 세월이 흐르는 과정에 이전되여 생겨난 말이다. 그리고 《짠지》는 국물이 없이 짜고 매운 김치를, 《싱건지》는 국물이 맑고 싱거운 김치를 말하였다. 우리 나라 고유의 음식인 김치는 시원하고 쩡하면서도 독특한 향기와 상쾌한 감칠맛을 조화롭게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여러 나라들에 널리 퍼져 세계적범위에서 특색있는 건강장수식품으로 자기의 존재를 뚜렷이 나타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