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문화>유래와 일화
별미로 먹어온 동과와 토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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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과, 토란, 마, 우엉, 련뿌리 등은 오랜 력사를 가진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음식감이다.
우리 인민들은 이것을 주로 별미로 먹었고 식량이 부족할 때에는 주식음식감로도 널리 리용하였다.
○ 동과
우리 인민들이 동과를 식생활에 리용한것은 오랜 옛날부터이지만 력사자료에는 13세기부터 나온다.
그후 《도문대작》, 《시의방》, 《산림경제》, 《규합총서》 등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나온 농서들과 료리책들에도 동과의 재배와 가공방법들이 소개되여있다.
우리 선조들은 흔히 동과로 석박지, 김치, 장절임, 죽 등을 만들어먹었다.
동과절임은 동과의 껍질을 벗기고 적당히 토막내여 소금에 절인 음식이였고 동과석박지는 속을 파낸 동과안에 동과살과 마늘, 청각, 미나리 등과 조개젓국을 채워넣고 익힌 음식이였다.
그리고 동과김치는 나박김치 담그듯이 동과살을 얇게 썰어 미나리, 파 등 양념감을 두고 담근 여름철김치였고 동과죽은 동과살과 고기를 넣고 끓인 다음 백하젓으로 간을 맞춘 음식이였다.
우리 인민들은 또한 동과살을 썰어 마늘, 장과 함께 기름에 볶다가 지져 먹기도 하고 동과살에 꿀을 넣어 졸여 먹기도 하였다.
○ 토란
토란도 력사책들에 많이 기록되여있는 음식감인데 우리 나라 중부와 남부지방에서 예로부터 리용한 남새의 하나이다.
덩이줄기, 잎 등은 반찬을 만드는데와 과자의 원료로 썼다.
덩이줄기가 작은것은 그대로, 큰것은 토막내여 삶아 먹거나 국, 볶음, 졸임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루내여 쌀에 섞어 밥을 짓거나 지짐 또는 죽도 만들어 먹었다.
평안도, 황해도, 개성 등지에서는 8월 추석날에 토란국을 끓여먹는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이날의 첫 인사가 《토란국을 먹었는가.》라는것이였다.
일상적으로 먹는것도 좋았지만 토란은 특히 큰물이나 가물로 농사가 안되여 기근이 들었을 때 큰 은을 냈는데 이 경우 서리가 올 때 거둔 토란을 껍질벗겨 쌀 씻은 물에 우리고 데쳐서 말려두었다가 그대로 또는 가루를 내여 먹었다.
○ 마
마는 고대부터 우리 인민이 즐긴 남새의 하나였다.
백제의 무왕은 어릴 때 마를 캐서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를 서동(마를 파는 아이)이라고 이름지었다고 《삼국유사》는 전하고있다.
마를 팔던 아이가 왕이 되였다는 이야기를 믿을수는 없으나 이 기록은 당시 마를 캐여 시장에 내다팔면서 생계를 유지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며 그것이 일상음식감으로 리용되였다는것을 말해준다고 볼수 있다.
그후 20세기 초까지 마는 전통음식감으로 귀하게 리용되였다.
우리 인민들은 마를 고구마처럼 그대로 껍질을 벗겨 먹기도 하고 강판에 갈아서 즙을 내여 간을 맞추어 마시거나 밥에 섞어 비벼먹기도 하였으며 국거리로도 썼다.
또 가루를 내여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반죽하여 마수제비를 만들거나 쌀과 함께 죽을 쑤어 먹기도 하였다.
마를 오래전부터 식생활에 리용하여왔으므로 우리 나라에서는 남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 일만 그대로 하는 사람을 비겨 이르는 《귀 먹은 중 마 캐듯》과 남의 물건을 훔쳐가거나 떼여먹는 경우를 이르는 《남의것을 마 캐여 먹듯 하다.》와 같은 속담들도 생겼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