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문화>유래와 일화
동지날의 동지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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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민들은 예로부터 동지날을 한해가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에서 《아세》 또는 《작은 설》이라고 하며 하나의 큰 명절로 쇠여왔다.
우리 조상들이 동지를 한해의 시작날로 본것은 동지 다음날부터 점차 해가 길어지기때문이였다.
우리 나라에서 동지를 명절로 쇤 력사는 매우 오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세나라시기에 벌써 동지를 력서계산에 포함시켰다고 하며 《고려사》에는 동지가 고려의 9개 명절중의 하나로 기록되여있다.
지난 시기 민간에서는 동지가 음력으로 11월 상순에 들면 《애동지》, 상순을 지나서 들면 《로동지》라고 하면서 애동지가 드는 해는 겨울이 춥고 로동지가 드는 해는 춥지 않다고 하였다.
또한 동지달에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 5월에는 비가 내려 모내기에 좋고 풍작을 이루게 되며 동지달에 눈이 내리지 않고 찬바람이 많이 불면 다음해 5월의 기후가 나빠지고 흉작이 든다고 하면서 동지를 5월과 련결시켜 《5동지》라고도 하였다.
궁중에서는 동지를 년중 가장 중요한 명절로 여긴데로부터 동지날에 특별히 연회를 차리군 하였다.
동지죽은 오랜 세월 우리 인민들의 동지특식으로 되여왔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동지라고 하면 의례히 동지죽을 생각하며 또 꼭 쑤어먹고있다.
동지팥죽의 유래에 대해서는 한해가 시작되는 날로, 큰 명절로 여긴 동지날을 계기로 그해에 지어놓은 햇곡식가운데서 붉은 팥을 맛보려고 팥죽을 쑤어먹은것이 풍습으로 굳어졌다고 볼수 있다.
고려말기의 시인 리색(1328~1396)은 동지팥죽에 대하여 《동지엔 고을풍속 / 팥죽을 되게 끓여 / 차름차름 담으면 / 빛갈도 고울시고 / 꿀을 타서 후룩후룩 / 마셔나보오》라는 시를 남기였다.
동지팥죽은 여느 팥죽과는 달리 찹쌀가루로 새알만 하게 동그랗게 빚은 오그랑이(알심 또는 새알심이라고도 함)를 두고 쑤었다.
동지죽을 쑬 때에는 다른것들보다 류달리 큰 오그랑이를 몇알 만들어넣군 하였는데 큰 오그랑이가 차례지는 아이에게는 복이 차례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어머니들은 팥죽을 그릇에 담을 때 큰 오그랑이가 아이들에게 고루 차례지도록 하는데 관심을 돌렸다.
대부분의 지방들에서는 더운 팥죽을 훌훌 불면서 먹기를 좋아하였지만 강원도에서는 팥죽을 그릇에 담아 살얼음이 질 정도로 차지도록 장독대에 올려놓았다가 뜨뜻한 온돌방에서 밤참으로 먹기도 하였다.
평양지방에서는 예로부터 동지죽을 동지날 해가 떠오르기전에 쑤어먹는 풍습이 있었다.
동지죽은 좋은 음식이라 하여 이웃집에서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