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문화>유래와 일화
독특한 고기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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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민의 겨울철특식에서 이채를 띠는것중의 하나는 고기구이이다.
조선사람들은 예로부터 고기구이가운데서도 소고기구이를 가장 고급한것으로 쳤다.
우리 나라에서 소를 집짐승으로 기르기 시작한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7천년전부터이다.
고조선과 부여에서는 말, 돼지, 양, 개 등과 함께 소를 많이 길러 식생활에 리용하였다고 한다.
세나라시기에 와서도 소는 중요한 고기원천으로 되여있었으며 이로부터 소고기음식이 상당한 정도로 발전하었다.
고려시기와 그 이후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소고기는 중요한 음식감으로 리용되여왔다.
1508년 봉건정부에 올린 건의서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평안도에서는 소를 잡아 손님을 접대하는것이 하나의 관습처럼 되여버렸다. 례하면 의주와 같은 곳에서는 손님이 왕래하면 소를 잡는것을 닭을 잡는것처럼 하였다.》
이것을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소를 많이 길렀을뿐아니라 소고기음식을 발전시켜왔다는것을 알수 있다.
소를 주요한 부림집짐승으로 자지의 살붙이처럼 애지중지 키우며 관리해온 우리 인민들이 닭 잡듯이 소를 잡아 식용으로 했다는것이 잘 믿어지지는 않지만 어쨌든 우리 나라의 옛 료리책들에는 설렁탕, 족편, 약산적, 소고기구이를 비롯한 소고기음식들이 적지 않게 올라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다 맛이 절묘한 고급음식으로 평가되여있다.
소고기구이는 벌써 고구려때에 《맥적》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었는데 《맥적》에서 《맥》은 고구려의 기본주민집단을, 《적》은 구이를 가리켰으므로 맥적은 고구려의 소고기구이를 의미하였다.
맥적은 그후 고려시기에 이르러 《설야멱적》이라는 이름으로 계승되였다.
설야멱적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지방의 명물이였으며 고려시기에 그 가공법이 이웃나라에까지 알려져 그 나라 궁중에서까지 소문이 자자하던 유명한 음식이였다.
이 음식은 처음에 《설야멱》이라고 불리웠는데 이에 대하여 《송남잡지》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있다.
《옛날 어느 임금이 눈오는 밤에 급한 정사를 론하기 위해 한 신하를 찾아가니 마침 그는 숯불화로와 물그릇을 놓고 고기를 굽고있었다. 그후 이 음식이 보급되면서 눈오는 밤에 찾아가 맛본 음식이라는 뜻에서 <설야멱(눈 설, 방 야, 찾을 멱)>이라고 하였다.》
후세에 와서 설야멱은 구이라는 의미에서 《적》자가 덧붙어 《설야멱적》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설야멱적은 명실공히 고구려의 맥적에서 기원된 조선고유의 전통음식으로서 오랜 력사적기간 우리 인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해내려왔다.
소고기구이는 특히 설명절의 절식이였다.
꿩구이와 참새구이도 소고기구이에 못지않게 겨울철에 즐겨 만들어 먹은 맛있는 특별음식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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